Journal of Korea Robotics Society
[ ARTICLE ]
The Journal of Korea Robotics Society - Vol. 20, No. 2, pp.168-176
ISSN: 1975-6291 (Print) 2287-3961 (Online)
Print publication date 30 May 2025
Received 10 Mar 2025 Revised 07 Apr 2025 Accepted 26 Apr 2025
DOI: https://doi.org/10.7746/jkros.2025.20.2.168

휴머노이드의 얼굴에 대한 윤리적 고찰

이한진
Ethical Reflection on the Face of Humanoids
Hanjin Lee

Correspondence to: Researcher, Department of Ethics Education, Cheongju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Chungbuk, Korea ( gadfly@cje.ac.kr)

CopyrightⓒKROS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the ethical implications of humanoids with human-like appearances on human attitudes and social relationships from a moral philosophical perspective. While robots have traditionally been developed to assist human labor and convenience, the emergence of humanoids capable of emotional interaction raises ethical concerns regarding human-robot relationships. Drawing on Levinas’s philosophy, this study explores the ethical significance of the face as a key mechanism for recognizing otherness and moral responsibility. The human face embodies individuality and identity, and encountering another’s face naturally invokes ethical obligations. However, humanoids with human-like faces may weaken users’ moral awareness. If they replace human interactions, they could reduce social engagement skills and reinforce the objectification of Others. To address these concerns, this study highlights the ethical challenges associated with humanoid facial design and emphasizes the need for regulatory frameworks to preserve human dignity. Establishing clear ethical boundaries in human-humanoid interactions is essential to ensuring that technological advancements do not compromise fundamental human values.

Keywords:

Humanoid, Robot Ethics, Face, Levinas, Humanity, Moral Responsibility

1. 서 론

기계는 인간의 욕망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모든 기계는 인간 노동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측면에서 이로운 존재다. 인간 창조물의 본질적인 쓰임은 창조물의 존재 이전에 그 쓰임을 담당하던 사물이나 인간 행위를 대신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전구의 발명이 촛불을 대체하고, 에어컨의 발명이 부채를 대체한다. 이는 로봇도 마찬가지다. 특히, 로봇은 인간에게 높은 위험 부담이 따르는 작업장이나 혐오 시설과 같은 곳에서 일할 필수 인력을 대체하며, 서비스업의 종사자를 직접적으로 대신하거나 도우미 역할을 맡기도 한다.

그런데 로봇은 고도의 센서와 프로그래밍을 기반으로 스스로 결정을 내리며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일반 기계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AI는 스스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고 따라서 인간을 대신하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행위자에 가깝다[1]. 하지만, 그럼에도 로봇은 여전히 기계다. 아무리 자율성과 고도의 지능을 갖춘다고 해도 탄생의 기원을 비교하면 기계는 인간과 다를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나 로봇은 실존으로서의 인간과 달리 인간에 의해서 창조되었으며 인간의 필요에 따라 존재의 의의가 결정된다.

설사, 로봇이 이성을 비롯하여 인간의 종적(種的) 특징을 보여주는 핵심 기능들을 인간보다 더 잘 발휘한다고 하더라도 로봇은 로봇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들이 실제 인간과 로봇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간을 닮은 로봇이 등장해도 변함이 없다. 다시 말해서, 로봇이 인간보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앞선다고 해도 로봇은 ‘인간보다 뛰어난 로봇’일 뿐 인간은 아니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 로봇이 대신해 주는 일에는 한계가 없다. 어떤 영역이든 인류의 번영에 도움이 되는 쪽이라면, 여기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로봇이 개발되는 일은 바람직하다. 문제는 로봇이 대신하는 일의 성격이다. 대개의 일은 인간이 사물을 대상으로 삼아서 진행되기도 하지만 직접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여 진행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 특별히 윤리적 숙고가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사물은 고통과 쾌락을 느끼지 못하며,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로봇은 애초에 인간이 그 로봇을 창조한 이유에 부합하는 성능에 초점을 두면 그만이다. 이 로봇으로 파생될 수 있는 사회 문제는 부차적이다. 예를 들어, 청소 로봇의 등장으로 청소부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분명 문제지만, 인간의 도덕성을 타락시키는 근본적인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러나 후자처럼 인간이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일을 대신하는 로봇을 개발할 때는 고도의 윤리적 검토가 요구된다. 무엇보다 인간성 상실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무한 욕망을 동력으로 로봇 산업은 인간에 최대한 근접한 로봇을 만드는 방향까지 내달리고 있다. 사람의 형상을 갖고, 직립보행이 가능하며,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로봇은 이미 현재형이다. 사물과의 접촉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은 로봇을 더욱더 인간화하려 한다. 2022년 일본에서 살아 있는 세포로 구성된 피부를 로봇 손가락에 성공적으로 이식하여 자가 치유 능력을 갖춘 피부를 구현하였고[2], 인간의 다양한 감정이 드러나는 표정 변화를 감지하고 모션 생성 모델을 활용하여 사람과 상호작용하는 로봇의 개발도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3]. 인간이 인간과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인간과 닮은 로봇의 도래가 멀지 않았다. 피부와 감정을 장착한 휴머노이드는 시나브로 인간의 친구가 될 자격을 획득해 가고 있다.

사람 친구를 원하는 이들에게 로봇은 소위 ‘맞춤형 친구’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인간의 몰골로 나를 상대하고,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나의 기분에 맞춰 상호작용 해주는 로봇 친구는 특히나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사람 친구보다 선호의 대상일 수 있다. 휴머노이드와의 관계 맺음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 사람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마찰과 피로도 줄일 수 있다.

사람 친구를 로봇 친구로 대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로봇이 기계처럼 느껴지지 않고 최대한 사람으로 느껴지길 바랄 것이다. 사람처럼 느껴지므로 실제 사람과 상호작용할 때의 이점은 모두 얻을 수 있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기계이기 때문에 인간 관계에서 부여되는 책임 따위에서는 자유롭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면 사람들은 인간성의 본질로서 도덕적 책임감을 망각할 우려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휴머노이드의 얼굴은 윤리적으로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얼굴은 개개인이 개별 정체성을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휴머노이드를 개발할 때 얼굴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 것인가와 관련하여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단적으로 휴머노이드의 얼굴 형태, 인간과의 유사성, 감정을 인식할 수 있는 표정 변화에 따라 그것을 대하는 인간 행위자의 태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휴머노이드가 사물이라는 진실과 상관없이 그것과 관계 맺는 인간의 지각과 감수 능력에 따라 휴머노이드는 얼마든지 사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인간처럼 느껴질 수 있다. 여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바로 얼굴이다. 향후, 인간과 거의 흡사한 얼굴을 지닌 휴머노이드 출현에 따라 다양한 윤리적 쟁점이 부상할 것이다. 이에 따라, 본 연구에서는 얼굴이 지닌 의미에 대해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타자윤리 이론에 기반하여 고찰하고, 향후 예상되는 윤리적 문제를 살펴보고, 대응 방안에 대해서 제언하고자 한다.


2. 얼굴의 윤리학적 의미

2.1 인간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얼굴

인간의 얼굴은 단순한 신체적 특징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인간 개개인의 고유성이 외부로 드러나는 원초적 특징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일차적으로 얼굴을 통해서 상대를 인식하고, 감정을 공유한다. 에크만은 얼굴을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의 핵심 수단으로 보았다. 그리고 얼굴은 눈, 코, 입 등의 감각 수용체가 위치하여 신체화된 인격을 표현하는 매개체이다[4].

인간의 얼굴은 단순히 태어날 때 주어진 대로 유지되지 않는다. 즉각적으로 얼굴을 구별하기 어려운 일란성 쌍생아조차 얼굴이 완전히 똑같지 않다. 태아 시기부터 영양 공급, 자궁 내 위치, 출생 과정 등의 차이로 인해 얼굴에 미묘한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개나 원숭이 등의 모든 포유류도 마찬가지다.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물려받는 과정에서 유전자 재조합이 일어나기 때문에 아무리 같은 종이라고 할지라도 개체마다 얼굴이 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대 사회에서 얼굴은 개인정보로서 개인을 식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이미 얼굴 인식을 활용한 생체 인증 기술이 보편화되었다. 스마트폰 잠금과 해제도 얼굴 인식으로 가능하다. 홍채나 피부색, 주름, 얼굴에 난 점 등 미세한 특징을 분석하여 개인을 식별하는 데 단 1초도 걸리지 않는다.

한편으로 얼굴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삶의 이야기와 함께 변화를 겪으며 형성된 삶의 흔적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반복과 습관을 통해 형성된 표정 변화 정도와 감정 표현 방식 등은 얼굴의 고유한 개성을 보여준다. 때로는 어떤 구체적 사건이 계기가 되어 얼굴 윤곽과 표정이 바뀔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얼굴은 개인의 서사가 고스란히 담긴 기록물이기도 하다.

테슬라가 개발 중인 옵티머스가 보이는 머리, 팔, 손가락 등의 움직임은 인간과 거의 흡사하다. 향후 위험하거나 반복적인 일을 대신함으로써 인간의 불편을 상당 부분 해소할 것이라 기대되면서도 로봇 권리나 도덕적 딜레마에서의 의사 결정에 대한 윤리적 고려 사항을 다루는 과제가 남아 있다[5].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옵티머스를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라고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바로 얼굴이다. 옵티머스의 얼굴에는 눈, 코, 입이 없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옵티머스는 동일자가 수도 없이 존재하는 사물인 셈이다. 내가 소유한 옵티머스와 정확히 똑같은 외형을 가진 옵티머스가 옆집에도 있을 수 있다.

최근에는 감정 기반의 멀티모달(Multi Modal) 지각 모델을 활용해 음성, 표정 움직임에서 인간과 유사한 상호작용을 수행하도록 개발되었으며[6], 피부 질감, 정맥 패턴, 손금까지도 실제 사람과 유사하게 구현된 휴머노이드 연구도 진척을 보이고 있다[7]. 주목할 점은 이러한 로봇이 표준화된 대량생산 외에도 개인 맞춤형 제작도 가능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때 만약 어느 한 개인이 다른 사람들이 가진 휴머노이드와 다른, 유일하게 자신만이 소유한 고유의 로봇을 원한다고 할 때, 일차적으로 얼굴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얼굴은 시각적으로 존재자의 고유성을 확인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물론, 로봇의 외형적 움직임, 목소리, 시선 처리도 인간 유사성 인식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시선을 가진 로봇이나 인간과 유사한 목소리를 지닌 로봇은 그렇지 않은 로봇에 비해 왼쪽 배외측 전전두엽 활동을 증가시키고, 오른쪽 브로카 영역 활동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로봇의 제스처나 목소리가 인간과 유사할수록 인간에게 정서적으로 더 큰 즐거움과 각성(arousal), 호감을 유발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8]. 한편, 로봇의 제스처와 목소리에 더해 인간 유사성 강화를 위해 얼굴 유사성 또한 중요하다. 얼굴은 인간의 복합 감정까지도 미세하게 드러나는 장소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떠올릴 때 직관적으로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십억 인구 중에서 팔과 다리만으로 사람을 특정 짓기는 어렵다. 더구나 오늘날 문명인들은 얼굴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신체 부분을 가리는 의복 문화를 가지고 살아간다. 다시 말해서, 오로지 얼굴을 떠올림으로써 누구로도 환원될 수 없는 한 사람과 대면할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인간들의 실수를 찾아내어 조롱하다가 결국 신들에게마저 미움을 받고 쫓겨난 냉소의 신 모모스가 등장한다. 일부 전설에서는 신들이 그를 싫어하여 그의 얼굴을 지워버렸다고 전해진다. 이 벌은 고유성의 박탈을 상징한다. 얼굴이 없는 채로는 자기 서사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얼굴을 가진 인간과 로봇은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얼굴을 잃은 개인은 정체성까지 잃어버리고 익명화된 존재로 남게 된다. 익명화된 존재와의 관계 맺음은 인간과 사물이 맺는 관계나 다름없다. 얼굴 없는 사물로서의 인간은 개별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언제든지 또 다른 인간으로부터 객체화되거나 도구화될 위험이 있다. 이는 인간 존엄성의 상실과 같다.

2.2 얼굴이 호소하는 윤리적 명령과 책임

얼굴을 존재자의 고유한 존재성이 드러나는 방식이라고 설명하는 철학자가 있다. 바로 에마뉘엘 레비나스다. 그는 존재론에 앞서 제일 철학(philosophie première)으로서의 윤리학을 정립하고자 했다[9]. 그는 인간에게 부과되는 윤리적 명령의 성격에 대하여 얼굴(face)이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설명해 내고 있다. 얼굴을 존재자의 존재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인격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향후 휴머노이드의 얼굴을 어떤 모습으로 제작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흔히, 레비나스의 윤리학 이론을 ‘타자 윤리’라고 부를 만큼, 그의 관심사는 타자에 대한 주체의 책임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때 타자에 대한 책임은 계약이나 상호 당사자 간의 합의의 차원으로 설명될 수 없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책임은 인간의 본질적 조건으로서 주체가 선택할 수 있는 책임이 아니다. 법적 의무처럼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존재 자체가 주체에게 일종의 윤리적 호소를 하고, 윤리적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 호소에 응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논의는 책임에 대한 레비나스의 독특한 입장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윤리적 책임이란 주체가 스스로 한 행위에 따라 주어지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타자에 대한 책임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우리는 존재성으로 말미암아 윤리적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마주하는 순간 이미 윤리적 관계 속에 놓이게 된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

그런데, 레비나스는 타자에 대한 주체의 책임을 이야기할 때 윤리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서 얼굴 개념을 사용한다. 그는 얼굴이 타자의 윤리적 요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가장 근원적인 방식이라고 본다. 그에 따르면, 얼굴은 단순히 신체적 특징이 아니라, 타자의 취약성과 존재성 자체를 드러내는 현상학적 경험이다[10].

그에 따르면, 타자의 존재성은 얼굴로서 드러나며, 타자는 드러남과 동시에 얼굴로써 주체에게 말을 건넨다. 타자의 얼굴은 비언어적이지만, 단순히 시각적 이미지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주체에게 윤리적 책임을 부여하는 윤리적 메시지이다[11]. 메시지의 본뜻은 얼굴을 외면하지 말라는 윤리적 호소이며,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이 전하는 윤리적 요청을 받아들이는 자세야말로 도덕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참된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레비나스는 타자를 인간의 인식으로 온전히 이해될 수 없는 존재자로 설정한다. 즉, 타자는 인식과 표상의 대상으로서 주어지는 게 아니다. 타자는 어떤 맥락이나 의미의 지평을 통해서도 완전하게 주체의 인식으로 흡수되거나 경험될 수 없다. 우리가 만약 타인을 완전하게 이해한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의 의식으로 완전히 들어가야 하며, 완벽하게 그의 몸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자신의 의식에 기대어 타인을 해석할 뿐이다.

타자성이 주체의 경험으로 이해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을 하나의 사물처럼 대상화하여 인식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유 방식에 근본적으로 윤리적 문제가 숨어 있다. 타자와 관련하여 주체의 의식 작용에 따라서 인식이 가능한 부분은 흡수되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은 배제되는 인식일 수밖에 없는 동일성의 논리로 귀결된다.

흡수와 배제가 선택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유 방식에서 타자의 타자성은 주체에 의해서 훼손될 수밖에 없다. 레비나스는 동일한 존재 안에 모든 것을 포섭하고자 하는 논리가 서양인들의 사유 체계 안에 오랜 시간에 걸쳐 자리 잡았고, 이러한 사유 방식이 존재자들 사이의 차이를 지워버리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사유 방식은 일종의 폭력으로 작동하게 되어 심지어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비극을 초래한 원인이 되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주목할 점은, 레비나스가 동일성의 폭력을 극복하기 위한 윤리적 대안으로 ‘얼굴의 현현(épiphanie)’을 이야기했다는 사실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타자의 얼굴은 어떤 범주와 개념적 틀에도 포섭되지 않는다. 얼굴은 환원 불가능한 유일성을 지시하며 주체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체가 인식하기 이전에 의미를 발한다. 사실, 레비나스는 얼굴이 자기 스스로 내보이는 방식을 ‘계시’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12]. 그 의도는 얼굴의 현현이란 주체의 노력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떠한 매개항도 없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절대적 경험임을 묘사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인간 의식의 한계는 윤리적 삶에 중대한 문제를 야기한다. 인간이 인간의 주관적 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객관성을 담보로 하는 윤리를 어떻게 인식할 것이며, 또 그것의 오류 유무를 의식 이외에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해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레비나스는 이성이 아닌 감성적 존재로서 인간을 이야기했다. 즉, 인간은 이성적으로 숙고하기 전에 타자의 윤리적 요청을 감성적으로 지각한다는 것이다. 타자의 윤리적 호소에 대해 거부할지 말지는 그 뒤의 일이다.

이미 타자의 얼굴은 주체의 윤리적 판단 이전에 윤리적 요청으로 다가간다. 즉, 얼굴이 언어보다 앞서 있다. 우리가 누군가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지각의 의미 이상을 지닌다.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은 타자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의미한다. 다만,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이 가진 힘을 헐벗음, 상처받을 가능성(vulnerabilité)에서 찾는다. 그는 타자의 얼굴을 그의 모든 약함이 터져 나오고, 동시에 그의 필멸성이 솟아오르는 장소로 묘사한다[13]. 무저항성의 연약한 얼굴이 인식할 틈도 없이 주체에게 현현하게 되며, 오히려 그렇게 저항할 수 없는 연약함으로 솔직성(sincérité) 있게 현현하는 얼굴이 도덕적 호소력을 지닌다고 본 것이다.

타자의 얼굴이 비언어적으로 건네는 호소를 거부하지 않는 태도는 윤리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한다. 즉, 윤리적 삶은 그 타자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자신과 또 다른 타자 사이에 얼굴을 마주할 때 그가 호소하는 윤리적 요청을 들을 수 있다. 얼굴과 얼굴의 만남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다.

종합해 보면, 얼굴은 사람과 사람을 환대하는 장소인 셈이다. 우리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함으로써 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타자에 대한 책임을 떠안게 되고, 나아가 나의 자유를 방해받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타자의 얼굴과 만남은 윤리적 주체로서의 정립을 위한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3. 휴머노이드가 초래할 윤리적 근본 문제

3.1 인간의 무한 욕망과 로봇

로봇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이미 일상화된 로봇 청소기부터 시작해서 제조 공장에서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한다. 정밀한 수술을 보조하는 다빈치 로봇(Da Vinci Surgical System)도 있고, 군사적 필요 및 위험한 환경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정찰하는 로봇도 있다. 화성 탐사를 위해 NASA가 개발한 퍼서비어런스나 큐리오시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로봇들은 굳이 인간의 모습을 띨 필요가 없다. 즉, 얼굴이 필요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로봇은 사람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을 대신하기 위해서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핵심 관건은 애초 개발 목적에 부합하는 로봇의 성능이다.

이와 달리, 사람 자체를 대신하기 위해 개발되는 로봇이 있다. 바로 휴머노이드다. 언뜻 생각하면, 휴머노이드도 단순히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일의 속성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인간형 로봇과 그렇지 않은 로봇 사이에는 외형 이상으로 매우 큰 차이가 있다.

단적으로 가정용 로봇 청소기는 내가 해야 할 집 안 청소를 대신하는 것이지, 청소하는 ‘나’ 혹은 ‘그’라는 존재 자체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는 여전히 ‘나’ 혹은 ‘그’로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과의 상호작용 및 교감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안정과 행복은 편리함으로 환원될 수 없다. 늘 그 이상이다. 예를 들어서 돌아가신 어머니의 품속을 똑같이 느끼고 싶다거나 자신이 원하는 매혹적인 상대와 연애를 갖고 싶다고 해서 그것이 로봇을 통해 완전하게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하나같이 모두 고유성을 지닌 존재자로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기술의 발달, 특히 로봇의 진화는 위와 같은 욕망을 실현하는 길로 인간을 인도한다. 아마도 규제가 없다면, 휴머노이드를 개발하는 회사는 인간의 무한 욕망을 분석하고 인간의 욕구를 채워줄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서 사활을 걸 것이다. 노예처럼 주인에게 완전히 복종하고 소유될 수 있는 로봇의 탄생도 짐작이 된다.

한 예로, 성적 유희와 쾌락에 함몰된 인간이 욕구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성인용 로봇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인간을 결코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우하라’는 칸트의 윤리적 명제에 어긋남이 없다. 어디까지나 로봇은 사물이기 때문이다.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은 소비자의 선호에 부응하여 최고의 만족을 선사할 로봇 개발에 힘을 쓸 게 분명하다. 로봇의 상품성은 소비자의 욕망을 반영할 때 가치가 증대된다.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 공학 3대 원칙은 로봇의 윤리적 역할을 규정한 시초로서 의의가 있지만, 실제 적용 시 명령 간 충돌, 윤리적 판단 능력 부재 등의 한계를 지닌다[14].

로봇 공학 3대 원칙 중 두 번째 조항 “로봇은 첫 번째 법칙과 충돌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인간이 로봇을 수단으로 삼아 자신의 욕망 추구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상황을 제어할 수 없다.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고, 위험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첫 번째 조항을 충족시킨다면 로봇은 무조건 주인의 명령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첫 번째 조항을 무시하고 세계 각국에서 전쟁에 사용할 무인 장갑차와 무인 전투기가 보급되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사이의 전쟁에서 이미 자폭 드론이 사용되고 있다. 전쟁 중에 사용되는 로봇은 개발자들이 로봇 원칙의 첫 번째 조항을 무시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다. 인류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첫 번째 조항을 지킨다면 살상용 로봇은 만들어질 수 없다. 전쟁에서 사용되는 자폭 로봇이 탄생 배경에는 자국의 실리를 위해서라면 로봇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살상을 용인할 수 있다는 인간의 비도덕성에 있다.

이와 다르게 성인용 로봇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윤리적 문제를 지니고 있다. 적어도 이 로봇은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도구라는 점에서는 앞의 로봇들과 별 차이가 없지만, 타인에게 위험을 초래하지 않으며, 주인의 명령을 어길 일도 없다. 기업 입장에서도 성인용 로봇의 개발에 있어서는 단지 주인과의 1:1 관계 속에서 원하는 욕구를 해소시켜 주기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적어도 로봇 3원칙과 관련해서는 위배될 염려가 미비하다. 그래서 전쟁용 로봇보다 도덕적 비난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로봇의 상용화가 인간의 욕망을 극단으로 내몰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인간의 뒤틀린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 로봇이 활용되면서, 그 욕망에 부합하기 위해서라도 기업들은 앞다투어 인간과 거의 흡사한 휴머노이드를 개발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극단화된 인간의 욕망과 결합하여 개발되는 휴머노이드는 인간성과 관련하여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3.2 휴머노이드의 사용과 인간의 고독

로봇은 주인의 소유물이다. 불법이 아니라면 주인은 자신이 돈을 주고 산 로봇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오히려 이것을 막는 이가 있다면 재산권 침해에 해당한다. 우리는 타인의 성인용 로봇 사용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인간이 자신에게 쾌락을 선사하는 성인용 로봇에게 책임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 이미 그는 상점에서 성인용 로봇을 사기 위해 낸 돈으로 그 사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튿날 그 로봇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폐기 처리한다 해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물론, 로봇을 인간의 노예 정도로 취급하는 것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로봇 원칙이 로봇 입장에서는 불평등한 독소조항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로봇을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 그러나 로봇에게 이러한 권리를 부여할 당위성은 없다. 로봇은 애초에 인간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유발 하리리는 로봇의 권리를 단호히 거부한다. 오히려 로봇이 인간에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불평하거나 로봇 원칙의 폐기를 주장하는 상황이 오면, 로봇에게는 그러한 표현의 자유가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1].

사람 자체를 휴머노이드로 대체하는 인간은 고독에 빠지기 마련이다. 레비나스는 주체가 타인을 동일성의 논리에 따라 타자를 대상화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의미의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모든 것이 사물처럼 흡수 또는 배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세계 안에 자신 외에는 어떤 타인도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레비나스는 이런 상태를 고독(solitude)이라고 부른다. 고독한 인간은 자기중심성에 매몰된 채 주변에 존재하는 어떤 사람도 온전한 타인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미래 사회에 친구와 가족을 휴머노이드로 대체하는 사람이 놓일 수 있는 상황이 바로 레비나스가 설명하고 있는 고독과 유사하다. 고독에 빠지는 방식은 다르지만, 본인 스스로 다른 사람을 만나 갈등 관계에 놓일 바에는 차라리 갈등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를 바라면서 고립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고독에 빠진 인간은 타자와의 갈등 상황 속에서 자기중심성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키우기보다는 갈등 자체를 회피하고 자기중심성을 보존하려 한다.

결론적으로, 갈등과 자기중심성은 이율배반적이다. 갈등 경험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은 절대 권력을 쥔 군주처럼 나머지 모든 이들 위에 군림하는 형식으로 자기중심성을 유지하거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홀로 있어야 한다. 당연히 오늘날 후자가 일반 대중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다. 여하튼 양자 모두 고독한 것은 동일하다.

혼자 남겨지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타인과 지내면서 겪게 되는 갈등에서 오는 피로도 견디기 싫은 현대인을 만족시켜줄 기계로 휴머노이드가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독거노인을 위한 돌봄 로봇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로봇들은 시장의 논리에 따라 그 대상이 점차 시민 일반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고독 속에서 정신적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은 노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 소셜 홈 로봇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가 노인이나 장애인을 보조하는 로봇에 집중되어 있고 다양한 문화권을 아우르는 일반 소비자들의 소셜 홈 로봇 수용에 대한 이해에 공백이 존재한다[15].

조심스럽지만, 인간의 고독을 해소하기 위해 창조된 휴머노이드는 고독감은 해소할 수 있을지언정, 인간이 또 다른 인간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해소되어야 인간성에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산업사회 이후 대량생산 함께 인간성 소외를 경험했고, 20세기 들어 일상화된 인터넷이 고독을 키웠는데, 이제는 로봇의 진화와 함께 휴머노이드가 출현하면서 주체 스스로 자신을 고독으로 밀어 넣을 수 있는 상황까지 걱정해야 하는지경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사람 친구보다 로봇 친구를 선호할 수 있다.

자신과 뜻을 같이하고 정신적으로 의지하며 위안을 줄 수 있는 친구는 인간 삶에 필수적이다. 갈수록 더 복잡해진 관계망 속에서 다양한 갈등 경험으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휴머노이드는 새로운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 그러나 휴머노이드는 건강한 공감과 성장의 동력이 되어야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중심성에 함몰되어 고독 속에 살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로봇을 좋아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그 이면에 타인을 휴머노이드로 대체하고자 하는 인간의 무한 욕망이 존재한다면, 인간성 보존 측면에서 득이 될 게 없다.


4. 윤리적 보루로서 휴머노이드의 얼굴

4.1 인간-휴머노이드, 인간-인간의 관계

인간관계를 포기하면서 휴머노이드와 관계를 맺는 것은 인간성 상실을 초래한다. 인터넷의 창궐로 익명성에 따른 사람 사이의 접촉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지고, 인간관계의 불안정성과 취약성이 증가했다면, 휴머노이드는 그 파급력이 훨씬 클 것이다. 휴머노이드가 인간 불안의 도피처 역할을 담당하면 할수록 인간관계의 취약성이 개선될 여지는 줄어들 것이다.

사람은 자신과 다른 이질성의 타자를 만날 때 비로소 고독에서 헤어날 수 있다. 하지만 동일성의 추구라는 맥락에서 생산된 휴머노이드와는 갈등 관계에 놓일 일이 없다. 만약, 어떤 이가 인간관계 속 갈등에서 연유하는 피로 때문에 휴머노이드를 구매했는데, 이 휴머노이드와 지내면서 계속 갈등을 겪는다면 그 로봇은 주인에게 성능이 떨어지는 로봇일 뿐이다.

물론, 로봇이 고도로 프로그래밍되어 주인과 적절한 갈등 관계에 놓이는 상황을 연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인의 마음이다. 언제든 사람의 마음은 변할 수 있다. 또한 애초에 갈등을 원하지 않아서,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친구를 원해서 휴머노이드를 구입한 경우라면 명령과 지시를 따르지 않는 로봇은 상품으로서 가치가 떨어진다. 설사, 주인이 오해나 잘못된 분노 감정을 표출할 때조차 공감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주인이 바라는 로봇이기 때문이다.

로봇에 대한 인간의 폭력과 관련하여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개발한 4족 보행 로봇인 스팟(Spot)의 안정성 실험을 위해서 발로 차는 행위에 대해 윤리적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감정이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로봇이지만, 이러한 행위가 사람들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둔감하게 만들 수 있다는 윤리적 우려는 최근의 이야기가 아니다. 케이트 달링은 로봇을 학대하는 일이 실제로 생명을 가진 존재에 대한 태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윤리적 감수성을 저하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16]. 이것은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로봇과의 관계에서는 한층 더 위험하다. 주인의 폭력에 인간 일반처럼 저항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점은, 휴머노이드가 여전히 사물이기 때문에 이를 인식하고 있는 인간은, 만약 상대가 사람이라면 함부로 할 수 없는 행위를 휴머노이드에게는 행사할 수 있다. 모든 스트레스를 휴머노이드에게 풀 수도 있다. 하물며 주인이 폭력을 행사할 때조차 상품으로서의 휴머노이드는 주인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 주인이 휴머노이드에게 이와 같은 잔혹함을 보이더라도 그 행위를 처벌할 법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설상 그 사람의 폭력성이 도덕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될지 몰라도 어디까지나 사람에게 해를 입힌 것은 아니며, 그조차도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철저하게 벗어나 혼자 사는 집에서 일어난다면 도덕적 비난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휴머노이드를 대하는 인간의 자기중심성 경향은 강해질 테고, 자신과 다른 타인과 관계 맺는 감각에는 더욱 서툴어질 수밖에 없다. 점점 더 인간성의 한 요소로서 사회성을 상실해 가면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소한 갈등에도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할 기회를 잃게 된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이때의 경험이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신과 다른 존재자를 만남으로써 서로의 다름을 전제로 상호작용 하는 과정에서 지력의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 인간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익숙해진 자기만의 공간에 홀로 남아 있는 주체에게는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인지 발달 차원에서 동화와 조절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지 불균형이 일어나야 하며 이를 위해서 낯선 환경, 자신과는 절대적으로 다른 타자를 만나야 한다.

최근에는 휴머노이드를 활용한 교육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의사를 전달하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로봇은 학생들의 사회성 향상에 도움이 될 거라는 전망도 있다[17]. 그리고, 교육공학 분야의 연구에서는 감정을 인식하고 다양한 몸짓으로 표현까지 가능한 휴머노이드가 학생들에게 교육적으로 상당히 유용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18,19].

단편적인 지식이나 기술에 대한 학습을 비롯하여 알고리즘적 사고 등의 향상에는 로봇과의 상호작용이 도움이 되지만, 통계에 기반한 사고 처리를 로봇은 정해진 정보와 규칙에 따라 결정을 내릴 뿐, 인간처럼 도덕적 갈등을 경험하거나 성장할 수 없다. 사람과의 대화는 수많은 데이터로 환원될 수 없는,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언제든지 흐를 수 있다.

인간의 감정 반응 역시 그렇다. 지식 학습이든 감정 교류든, 어떤 필요에서든지 인간이 로봇에게 기대하는 것은 삶 전반에 제공해 줄 수 있는 긍정적 효과다. 인간은 부정적 사태는 그 자체로 어쩔 수 없는 한계 상황이기도 하지만 성장과 도약의 계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삶의 부정성과 거리가 먼 로봇은 인간성의 보존과 성장에 한계가 있다.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이 필요하다.

휴머노이드의 일상화에 대비하여 인간과 관계 맺는 법은 그것대로 인간과 실제 접촉하는 가운데 배워야 하며, 로봇과 관계 맺는 법은 그것대로 로봇을 상대하며 배워야 한다.

한편,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만족은 로봇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서 온전히 채워질 수 없다. 특히 나를 위로하고, 늘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 그 로봇과 나눴던 교감은 얼마든지 반감될 수 있다.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론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인간과 유사한 외형이나 행동을 가진 존재가 오히려 인간에게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일으킬 수 있다. 사람의 뇌는 예상한 것과 실제 본 것 사이의 불일치를 감지하면서 불쾌함을 느낀다[20]. 한편으로 이것은 불완전한 유사성의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함으로써 탄생하게 될 휴머노이드의 경우, 상당 부분 비호감을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의할 점은 그렇게 될 경우, 향후 소비자가 로봇을 구입할 당시 그것이 로봇임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그것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인간과 교감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정말 그런 상황이 오게 되면, 인류는 로봇에게 어느 만큼의 지위를 부여할 것인가가 심각한 윤리적 쟁점이 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법으로 제정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 사람을 닮은 로봇과 대면하는 인간의 인간성에 근본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숙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앞에서 언급한 얼굴의 윤리학적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4.2 휴머노이드의 얼굴에 대한 사회적 합의

인간과 거의 구별하지 못할 정도의 휴머노이드를 개발하려는 공학자들에게 얼굴은 휴머노이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넘어서야 할 어려운 관문이다. 다양한 센서를 장착한 로봇이 인간의 얼굴에서 드러나는 표정 변화를 인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로봇이 그러한 표정 변화를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일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얼굴과 신체 표현력을 가진 휴머노이드의 출현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엑스로봇이 개발한 샤오치는 이미 인간의 미세한 얼굴 움직임을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종의 로봇들은 정서적 상호작용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교육과 심리상담 분야에서 특히 유익할 것이라 기대한다. 이미 초등교육용 로봇 개발에 있어서 얼굴 설계에 참고할 수 있는 아동들의 선호도 분석 연구 사례도 있다[21]. 아마도, 사람 얼굴처럼 자유자재로 표정 관리와 정서 반응을 보이는 휴머노이드는 어린이와 환자부터 시작해서 많은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일 것이다.

한편, 인간의 얼굴 형상을 가진 휴머노이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얼굴까지 모든 게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만들어진 휴머노이드는 일상에서 개인에게 인간 친구로 인식될 수 있으며 정서적 위안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고유의 얼굴을 가진 로봇을 선호하면서도 그것을 여전히 로봇이기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극단화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로봇의 주인은 자신의 휴머노이드가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자기 방식대로 고칠 수 있고, 업체에 보완을 요구할 수도 있다. 폐기 여부도 주인 마음이다. 문제는 얼굴을 가졌기 때문에 인간처럼 느낄 가능성은 충분한데, 그럼에도 여전히 돈을 주고 산 로봇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인이 로봇을 인간으로 대우할 필요는 없다고 느껴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이런 식대로라면, 휴머노이드 주인의 마음에 휴머노이드에 대해서 어떤 책임감도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인간-휴머노이드의 관계 속에서 강화되는 자기중심성은 인간-인간의 관계로 전이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특성들로 인해 인간 얼굴을 지닌 휴머노이드는 인간과 그 외의 로봇 사이의 경계에 존재한다.

창조될 때부터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 행세를 하도록 요구받은 휴머노이드라면 그에 적합한 방식으로 인간이 도덕적으로 예우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인간을 상대할 때와 똑같은 예우까지는 아니라도 말이다. 이것은 인간의 도덕성과 연결된다. 도덕성은 인간 종의 폭력성과 관련된다. 도덕적 삶의 지향 차원에서 휴머노이드를 함부로 파손하거나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모욕적 발언을 휴머노이드에게 쏟아붓는 등의 행위를 제지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 사람에게 행사할 수 있는 폭력성으로 전이될 위험을 막을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폭력성에 대한 전이를 막을 해법을 얼굴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의 폭력성이 인간-인간의 관계로 전이되지 않도록 차단할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휴머노이드의 얼굴은 없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친구처럼 지내던 휴머노이드를 하루아침에 물건이랍시고 내다 버리는 행위는 생명만 없다 뿐이지, 인간의 마음 차원에서는 가족처럼 지내던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행위와 진배없다.

피그말리온의 간절한 기도 속에서 생명의 기운을 얻은 갈라테이아는 더 이상 그가 함부로 버릴 수 있는 사물이 아니다. 인간이 이런 사실을 묵과하고 휴머노이드와 연계된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 욕망이 창조한 로봇과 관계 속에서 인간성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얼굴을 띤 휴머노이드 개발에 앞서 얼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물론, 공공기관이나 각종 전시장 등에서 고객을 위한 여러 가지 서비스의 질 향상 차원에서 사람의 얼굴을 가진 로봇이 줄 수 있는 이점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특별히 사람의 얼굴이 초래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고려하여 휴머노이드를 개발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얼굴 윤곽, 피부, 표정 변화 등 어느 정도 인간과 유사한가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제시되어야 하고, 휴머노이드 개발업체는 허용된 범위 안에서 얼굴을 표현해야 한다. 사용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눈, 코, 입이 있을 수도 있고, 있어서는 안 될 수도 있다. 적어도 타자에 대한 인간의 책임의 감각을 무뎌지게 할 수 있는 로봇에는 이목구비가 붙어 있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삶은 자신이 감정에 영향을 받으며, 또 감정으로부터의 영향은 피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얼굴과 몸짓을 통해 직접적으로 서로에게 섬세하게 전달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은 감염병 예방의 대가로 얼굴이 전하는 언어를 의도치 않게 차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얼굴의 유무는 단순히 외형의 문제가 아니다. 타자의 얼굴은 인간의 존엄성, 사회적 신뢰, 윤리적 책임을 부여하는 기제다. 얼굴 없는 휴머노이드는 주인에게 어떠한 책임도 지우지 못한다.

정리하면, 얼굴이 없는 타인은 단 하나의 신원으로 특정 짓지 못하므로 주체가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기 어렵다. 얼굴은 특정인을 식별할 수 있는 고유 정보임과 동시에 타자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을 부여하는 핵심 기제다. 정부는 휴머노이드의 얼굴이 지닌 의미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후약방문이 되기 전에 휴머노이드의 얼굴에 관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우선, 사람의 얼굴을 장착한 휴머노이드 개발자가 따라야 할 윤리적 지침을 개발해야 하며, 사용자의 입장에서 휴머노이드의 용도와 얼굴 유무, 형태에 따라 지켜야 할 규범을 숙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 방안도 마련되어야 한다.


5. 결 론

기계는 인간의 필요로 창조되며, 인간의 노동을 덜어주는 유용한 도구로 기능한다. 같은 맥락에서 로봇은 점차 인간을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점차 우리 삶 속으로 깊이 스며들고 있다. 그러나 로봇의 진화 속에 휴머노이드가 단순한 기계를 넘어 인간과 유사한 외형과 행동을 갖추면서 우리에게 새로운 윤리적 고민을 요구한다.

휴머노이드가 인간을 닮아갈수록 인간과의 구별이 어려워지고, 결국 인간은 그것을 단순한 기계로만 인식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인간과 유사한 얼굴을 갖춘 휴머노이드가 등장하면, 그것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도덕적 책임감이 흐려질 우려가 있다. 얼굴은 단순한 외형적 요소가 아니라, 타자의 고유성과 존엄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레비나스는 인간의 얼굴이 윤리적 책임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근원적인 요소라고 보았으며,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도덕적 의무를 느끼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간이 얼굴을 가진 휴머노이드를 단순한 소유물로 취급하고 그것을 자기중심적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만 활용할 경우, 인간과의 관계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적 태도가 희미해질 가능성이 있다.

휴머노이드의 사용이 인간 고유의 관계 맺음 방식을 왜곡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피하고자 휴머노이드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과 인격적 성숙의 기회는 감소할 것이다. 로봇과의 관계에서는 인간이 일방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자신의 입맛에 따라 로봇을 조정하거나 폐기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이 타자를 도구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학습하게 할 위험이 있으며, 결과적으로 인간성 상실을 초래할 수 있다.

본 연구는 로봇의 얼굴을 어떤 수준까지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논의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다만, 얼굴 표현의 사실성 수준에 따라 인간과의 혼동 가능성이나 윤리적 부담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향후 로봇 개발 및 연구에 있어서 얼굴의 표현 수준에 있어서 규제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휴머노이드의 얼굴 형태와 그 개발 방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단순한 서비스 로봇과 달리 인간을 닮은 얼굴을 지닌 휴머노이드는 감정적 상호작용을 유발할 수 있으며, 사용자의 심리와 윤리적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따라서 휴머노이드의 얼굴이 인간성과 윤리적 태도를 저해하지 않도록 하는 방향에서 다각도의 연구가 필요하며, 법적·윤리적 규제도 마련해야 한다.

휴머노이드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인간성을 해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관계 속에서 윤리적 경계를 분명히 설정하고, 휴머노이드의 얼굴이 인간의 도덕적 감수성을 무뎌지게 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혼동하며 인간성의 본질을 위협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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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진

2006 청주교육대학교 초등교육과(학사)

2013 한국교원대학교 윤리교육학과(교육학석사)

2022 한국교원대학교 윤리교육학과(교육학박사)

2023~현재 청주교육대학교 조교수

관심분야: 윤리학, 도덕교육, 철학교육, 교사교육